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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인생들] 건물주와 월세의 노예생각 2019. 12. 7. 11:18
나는 일종의 아르바이트로
역삼동의 다세대 주택 한 채를 관리하고 있다.
월세를 수금하고 집 주인에게 매 월 정산해 준다.
<예전에 썼던 글, 다양한 인간군상 세입자들>
강남쪽에는 조금 독특한 임대차 시장이 있는데
단기 임대차, 일명 깔세 시장이다.
예를 들어 보증금 500에 월세 50만원 방이 있다면
단기 임대로는 보증금 80에 월세 80이 되는 것이다.
보증금이 불과 한달 치 월세에 불과해서
집 주인 입장에서는 월세를 떼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월세가 비싸다.
일종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것이다.
관리 일을 하다보면 정말 별애별 세입자가 다 있는데
특히나 월세를 잘 못내는 세입자들이 많다.
정말 눈물 나는 사연들도 많은데
다들 인생 진짜 힘겹게들 살고 있다. ㅠㅠ
하긴 보증금 500만원 만들 돈도 없으니 ㅠㅠ
이런 단기 임대 원룸에 눌러 앉아 사는 것이다.
이사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가는 처지..
한 세입자는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하는데
사고가 나서 다치는 바람에 ㅠㅠ 일을 못하고
월세가 두 어달 밀리게 되었다.
건물주가 개거품 물면서 난리를 치니 =_=
어쩔 수 없이 나도 월세 독촉을 하게 되었는데
50대의 세입자 분은 정말 너무 미안한다며 ㅠㅠ
하루에 5만원씩 꼬박 꼬박 입금을 하겠다고 한다.
ㅠㅠ 저녁즈음부터 새벽까지 배달 하는것 같은데
이 추운 날 오토바이 배달, 진짜 너무 너무 춥고 힘들다.
나도 어릴적에 피자 배달을 해봐서 잘 안다. ㅠㅠ
50대의 그 세입자는 그렇게 힘들게
저녁부터 새벽까지 오토바이 배달로 하루 벌어서
매일 5만원을 밀린 월세로 갚아야 한다.
한달 30일이면 150만원..
그렇게 두 달치 월세를 간신히 갚으면
또 한 달치 내야 할 월세가 쌓인다. ㅠㅠ
그러다 눈 길에 미끄러져 또 사고라도 나면..
마음이 짠 하지만 내가 뭐 어찌하리..
건물주한테 이런 세입자의 사정 이야기 해봤자 콧방귀도 안 뀐다.
그 세입자는 계속 하루에 5만원씩 갚고 있다.
지금 이 밤에도 열심히 오토바이로 배달 하면서..
또 한 세입자는 아버님이 암 수술을 하셨단다.
일단 급한데로 차를 팔아서 아버님 수술비를 냈단다.
그런데 밀린 월세를 내긴 커녕 오히려 병원비가 모자르니
보증금을 잠시만 빼달란다. ㅠㅠ
보증금은 어차피 건물주가 가지고 있어서
딱한 마음에 내가 개인 돈으로 조금 빌려 주었다.
암 투병으로 고생 하셨던 아버님 생각도 좀 났다.
나도 당시 병원비 마련하느라 혼났었다.
전화로 울먹거리면서 ㅠㅠ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하다고 하는데.. ㅠㅠ
어찌 이런 사람에게 월세 독촉을 할 수 있으랴?
또 중년의 한 세입자는 월세를 계속 독촉하자
자기가 사업 망하고 와이프한테도 이혼 당하고
얘들도 못 보고 너무 인생이 힘들다는
인생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나도 월급쟁이라고
그래도 월세는 내셔야 한다고
못 내시면 방을 빼 달라고 하자
갑자기 안색이 돌변하더니
미린 월세는 돈이 없어 못 주겠고
오히려 이사비를 100만원 지원 해달라고 한다??
그거 안 주면 자기도 이사 못 가니까 배 째란다.. ㅠㅠ
이 사람도 원래는 이런 인간이 아니었으리라..
인간이 너무 막 다른 길에 몰리고, 갈때까지 가면
어떤 짓이라도 하게 되나보다.
또 한 세입자는 자살 소동을 벌이면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결국 4~5개월치 월세를 못내고 나갔다.
무려 93년생?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었는데
왠지 좀 맹하고 진짜 좀 뭐라고 하면
자살할꺼 같은 분위기여서 독촉도 제대로 못했다.
그런데 세입자가 짐을 뺀 후
방을 청소하다 보니 정신병원 약이 엄청 많이 나왔다.
아이고 그랬었구나 ㅠㅠ 우울증 치료를 받는 모양이었다.
그 세입자의 어머님께 전화를 했더니
그 어머님은 밀린 월세가 그렇게나 많냐며
아들을 그렇게 키워서 미안하다고 울먹거리셨다.
자기도 식당일을 하는데 입에 풀칠하기 바빠서
한 번에는 못 갚고, 매월 10만원 씩이라도
밀린 월세와 공과금을 갚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후 연락이 없어 다시 전화 해보니
없는 번호라고 나온다.. =_=
아.. 인생 참 힘들다.. 힘들다..
또 한 세입자는 거의 10년을 살고 이사 갔는데
계산해보니 매월 80만원씩, 10년간 월세 낸 것만
무려 9,600만원, 거의 1억 이었다.
그 돈이면 강북에서 전세방도 하나 얻을 수 있다.
애초에 80% 전세 대출이 되니까
20% 2천만원만 있으면 그냥 전세 구해서
10년간 낸 월세 1억원을 아낄 수 있었는데..
결국 10년동안 월세로 1억원 가까이 내고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 공과금, 청소비 공제하고
받아가는 돈은 30만원에 불과하다. ㅠㅠ
어디 다른 데 또 단기 월세 구했다고 한다.
아마 10년간 모은 돈은 한 푼도 없을 것이다.
아.. 이 세입자는 개미지옥같은
단기 월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같은 동네에 사는 친한 친구 한 명이 있다.
이 친구도 사정이 어려워서
거의 10년 이상 월세 살이 중이다.
원래는 옥탑방 25만원에 살다가
재개발로 쫒겨 나면서 ㅠㅠ
지금은 월세 45만원에 살고 있다.
45만원을 10년으로 계산하면
이 친구도 월세로 4~5천만원은 쓴 것이다.
하지만 정작 모은 돈은 한 푼도 없다.
내가 단 돈 천 만원이라도 모아서
전세 6~7천에 조그만 원룸을 얻으라고 조언 했지만..
그 천 만원 모으는게 너무 힘들단다. ㅠㅠ
친구가 돈을 모으려면
월세를 전세로 바꿔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든다.
돈을 모으려면 돈이 드는데
돈이 없으니까 돈을 못 모으고
그러다 보니 더욱 돈을 모으기 힘들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ㅠㅠ
대기업 다니는 다른 친구는 카카오 신용대출로
3% 이자로 9천만원까지 땡길 수 있다고 자랑 하는데
월세 사는 친구는 단 돈 오백만원도 빌릴 수 없다.
ㅠㅠ 우리 셋은 서로 다 친구기에
같이 술 자리에서 웃고 떠들지만
친구들의 속 사정을 아는 나는 기분이 좀 씁쓸하다.
지난 달에는 관리하는 건물이
잦은 누수와 정화조 펌프가 갑자기 고장나는 등
수리비가 꽤 많이 들었고
세입자들이 월세도 잘 납부하지 않아서
건물주에게 배당되는 금액이 적었다.
건물주는 개거품을 물며 소리를 질렀다.
[명색이 강남에 건물 가지고 있는데
월세 이거 받아서 어디다 쓰냐??
세금은 또 얼마나 많이 쳐 내는데?
넌 이것밖에 월세를 못 걷냐?]
야간 배달을 하며 매일 5만원씩 갚고 있는 세입자
아버지 암 수술비용으로 보증금까지 빼달라는 세입자
자살 소동을 일으키며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세입자
내가 월세를 못 내는 다양한 세입자들의 사정과
월세를 걷는 고충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럼에도 열심히 독촉하고 있다고 하자
[내가 자선 사업가야? 그 딴것까지 신경 써야되냐?]
월세 안 내는 인간들은 그냥 전기랑 가스랑 끊어 부려라.
아니면 아예 월세 받지마 그냥.
문을 콱 떼버려 쓰부리게!!]
건물주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내뱉고는
전화를 거칠게 끊었다.
하하.. 하.. 하..
과거 정산자료를 보니 건물주는 15년동안
순수한 월세로만 12억 정도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 동안 건물 시세도 거의 2배 정도 올랐다.
시세 차익만으로도 15억 정도는 벌었을 것이다.
건물주는 서울과 일산에 건물이 여러 채 있는 부자다.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월세가 적게 걷히는 것에 이렇게
흥분하고 화를 내는걸 보니
참.. 인간이란 그리고 돈이란 무엇일까..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진짜 사정이 어려워 월세를 못 내는 세입자.
돈 있어도 일부러 월세를 안 내는 세입자.
월세 안내는 인간들은 인정사정 봐줄 것 없이
전기랑 가스 끊고, 현관 문을 떼 버리라는 건물주.
아.. 그 사이에서 끼어 어쩔수 없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월세 독촉을 해야 하는 나 ㅠㅠ
이런 나와 같이 잔을 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10년 넘게 월세 살이중인 친구와
대기업 다니며 집 값이 올라 수 억원을 번 친구..
때때로 이 자본주의가 너무 잔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기 임대차 시장을 전전긍긍하는 그 세입자들도
10년 넘게 월세살이 하며 한 푼도 못 모은 친구도
원래는 큰 꿈과 포부가 있었을텐데..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자본주의와 부동산, 금융에 대해서
교육을 잘 받았다면 좋았을것을..
종종 기득권이 일부러 그런걸 가르치지 않는걸까?
라는 생각도 든다.
노예는 노예로 남아야지.
깨달으면 안되니까?
아.. 나는 아직 누굴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내 앞가림이나 일단 잘 하자. ㅠㅠ
난 집이나 자본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
자유시민으로 남겠다.
내가 정말 자유를 얻고 여유로워졌을 때
그 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자.
일단은 자본이다.
자본이 있어야 남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중에 정말 부자가 된다고 해도
집을 월세 주는 일 만큼은 하지 말자. ㅠㅠ
월세를 받지 못하면 사람이 악해진다.
월세 독촉을 하라고 욕을 버붓던
그 집주인의 목소리에서 일종의 광기가 느껴졌다.
분노와 탐욕에 가득찬.. ㅠㅠ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말자!
명심하자.
아무리 자본주의 시대고, 자본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자본 위에는 사람이 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
수저 계급론의 고찰.. 집주인의 횡포..
어느날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복도에서 여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아주 서럽게 엉엉 우는 소리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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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5만원 입금 했다고 문자가 왔다.
아이고 ㅠㅠ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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