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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언어의 온도, 이기주, 당신은 언어는 따뜻한 가요?책 2019. 11. 26. 13:55
책 뒷편의 글귀를 읽고 안 읽을수가 없었다.
[어제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은 삶도 없는 듯하다]
ㅎㅎ 한편의 시 같다.
사람, 삶, 사랑.. 이 세 단어가 비슷한 이유는
정말 그런 까닭일까?
작가 자신의 소개도 독특하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쓴다.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꽃을 올려놓는다]
원래는 기자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이런 섬세한 글을 쓸 수 있는지 놀랍다.
너무 섬세해서 이 험한 인생 살기엔
조금 피곤할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
하지만 작가는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
대게 아름답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 한글이 그렇다.
친구에게 '넌 얼굴도 예뻐~"
와 "넌 얼굴만 예뻐~"
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언어에도 따뜻함과 차가움
저마다의 온도가 있다.
따뜻한 말은 슬픔을 감싸 안아주고
고민을 털어내고, 위안을 준다.
반대로 차가운 말은
상대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게 한다.
당신이 쓰는 언어의 온도는 몇 도쯤 되나요?
여러 짧막한 글들의 모음이다.
수필인지 시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ㅎㅎ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만 몇 개 공유 해본다.
저자가 오래된 사찰의 석탑을 보고 있을 때
주지 스님이 와서 와서 말을 건낸다.
"이 곳의 석탑은 수백 년 이상 된 것들이야.
이런 탑을 만들 땐 묘한 틈을 줘야 해."
"네? 틈이라고 하셨나요?"
"그래,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지나치게 완벽만 추구하다간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채우고 메우는 일보다
그 틈을 만드는 게 더 어려울지 모른다.
현대인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틈이 너무 없다.
나는 빈틈이 많은 그런 인간이 되리라. ㅎㅎ
영화 '카사블랑카' 에서 험프리 보가트의
"당신의 눈동자를 위해 건배"
라는 멘트가 상당히 유명한데 ㅎㅎ
저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은밀하고 섬세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고르고 고른 표현이 바로
"당신 정말이지 5월을 닮았군요" 였다.
ㅎㅎ 아무리 간질간질한 표현이라도
진심이라면 용서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의 표현은 이거다.
"봄날의 곰처럼 너를 좋아해."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면 웃을 것이다)
사랑의 씁쓸한 단면.
처음에는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일지도 모른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 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가진 'sore' 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 라는 뉘앙스가 스며 있다.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결혼 상대 조건이 유난히 까다로웠던 선배가
직장에서 우연히 만난 동료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면서 했던 말.
"전에는 '나'를 위한 결혼을 하려 했던 것 같다.
이 여자를 만나 비로소 '우리'를 위한 결혼을 생각하게 됐지.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영화 '위플래쉬' 에서 주인공 앤드류의 아버지가 말한다.
"서른넷에 빈털터리가 되고
술과 마약에 취해 죽는 게 성공이라고 할 수 없지."
그러자 앤드류가 눈을 부릅뜨고 대든다.
"난 서른넷에 죽더라도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글'이 동사 '긁다'에서 파생했다는 말이 있다.
글쓰기는 긁고 새기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
글은 머리와 가슴에도 세겨진다.
마음 깊숙히 꽃힌 글귀는 지지 않는 꽃이다.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다.
문장 한 줄이 상처를 보듬고 삶의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그리움이 유독 커지는 날이면
우린 한 줌 눈물을 닦아내며 일기장 같은 은밀한 공간에
문장을 적거나, 낙서를 끼적거린다.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쏟아내야 하기에.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ㅠㅠ
사람, 사랑, 삶.. 세 단어 모두 비슷하다.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 아닐까?
글은 엉덩이 힘으로 쓰는 것이다.
즉 엉덩이력力과 필력力은 비례한다.
투자도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번 다는 말이 있는데
ㅎㅎ 글쓰기도 투자도 인내심이 중요한가 보다.
하지만 저자는 꼭 글이 완성되는 순간만 좋은게 아니라고 말한다.
한 줄 한 줄 문장을 정제하고 고쳐쓰는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커다란 희열을 느낀다고.
꽃도 그렇다. 화려하게 만개한 순간보다
적당히 반쯤 피었을 때 훨씬 더 아름다운 경우가 있다.
절정보다 아름다운 건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
송나라 때 시인 소옹은 이렇게 노래했다.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노라. 반 쯤 피었을 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린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계절도 감정도 인연도 죄다 그러할 것이다.
인생도 글 쓰는 것도 투자도 똑같다.
꼭 원대한 목표를 이루었을 때 행복한 게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노라. 반 쯤 피었을 때."
기다림은 무엇인가.
어쩌면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만났을 때의 기쁨은 커진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도 만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 때는 기다림만큼 슬픔도 커진다. ㅠㅠ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말 중에
"한 끼를 해치워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먹는 음식은
식사가 아니라 사료에 가깝습니다."
아.. 나는 이 말에 조금 충격 받았다.
어라.. 나는 제법 사료를 많이 먹고 있었다? ㅠㅠ
이상은의 '언젠가는' 노랫 가사 중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었구나"
아..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너무 가까이에선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한다.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할지 모른다.
한발 뒤로 물러나, 조금은 다른 각도로
소중한 것일수록.
동그라미와 세모가 언덕에서 구르기 시합을 했다.
당연히 모난 세모는 동그라미를 이길 수 없었다.
세모는 자신의 모서리를 깎아 다듬었다.
이제는 동그라미와 비슷하게 언덕을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구를 때 잘 보이던
언덕 주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고
구르는 일을 쉽게 멈출 수도 없었다.
세모는 과거가 그리워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자신의 모서리는 다 닳아 없어져
두 번 다시 세모로 돌아갈 수 없었다.
ㅠㅠ 아이고 내 모서리 어디갔니..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을 뜻하는 명名은 저녁 석夕 밑에 입 구口가 있다.
여기서 저자의 상상력이 정말 놀랍다.
고대 시절에는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천지는 어둠과 정적으로 뒤덮혔다.
이 때 피아구별을 할 수있는 유일한 수단은 목소리였다.
"철수야, 영희야, 잘 있었지?
먹을 것 구해왔다!"
캄캄한 밤, 어둠 속에서 자식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가 목 놓아 외치는 것이 바로 이름.
이름을 부르는 일은 숭고하다.
숭고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
화양백리 인향만리
향기로운 꽃 내음은 바람에 실려
백리까지 퍼져 나간다.
하지만 깊이 있는 사람의 그윽한 향기는
무려 만 리를 가가도 남는다. ㅎㅎ
당신의 인향人香은 몇 리를 가는가?
마지막 에피소드로 마무리한다.
저자는 몇 해 전, 꽃 축제에 다녀왔다.
하지만 가 보니 익히 왔던 꽃들 뿐이고
꽃보다 많은 인파에 미간만 찌푸린 채 돌아간다.
하지만 몇 달 뒤 출근길에
너무 아름다운 들 꽃 한 송이를 발견한다.
자세히 보니 꽃 한 송이도
여러 장의 샛노란 꽃잎이 붙어 있었다.
한복을 입은 예닐곱의 무희들이
부채를 흔들며 자태를 뽐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그 꽃 축제에서는
그런 예쁜 꽃을 발견하지 못한 걸까?
아차, 꽃 축제에 아름다운 꽃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런 꽃을 알아채고 음미하려는
내 여유와 의지가 없었던건지 모른다.
아뿔싸! 볼 준비가 안 돼 있는데, 느낄 여유가 없는데
무엇을 보고 느낀다는 말인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아 정말 강력한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는가?
저자는 처음 머릿글에서
당신의 언어는 몇 도쯤 되냐고 묻기도 했는데
아 나는 서풀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요새 이 블로그 글 대부분이 투자 관련 글이다.
내 머리 속이 오로지 돈과 투자로 가득 차 있다.
물론 투자를 하고 공부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는 이유도 크지만
요새 나의 삶이 좀 딱딱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만한
여유나 의지도 부족하고 ㅠㅠ
내 생각이나 언어의 온도도 다소 차가웠던 것 같다.
원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돈을 모으고 투자를 하는 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따뜻하게 주변 사람들과 같이 살기 위해서다.
이 책을 읽고 딱 2가지를 느꼈다.
1. 말과 생각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해야겠다.
2.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여유와 틈을 가져야겠다.
한 가지 더 추가 하자면
이제 사료는 좀 그만 먹자. ㅎㅎ
식샤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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